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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20 8년만의 여행기,네팔로 떠나다 (1)
  2. 2011.01.20 반쪽의 여행 - 소매물도

8년만의 여행기,네팔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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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사진은
내보이기 부끄러운 사진들이 많다
하지만 아직 한번도
공개해 본적이 없고 미천한
나의 사진생활 초창기의 사진들이지만
소중한 기억의 편린들을
담고 있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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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그냥 있을 수 는 없었다
회사생활 7년째
이루어 놓은것도 없지만
삶에 있어서
의욕이라곤 전혀 없었다

회사와, 술집과, 집으로의 챗바퀴가
극에 달했다고나 할까

그것에 대한 일탈로
FM2를 사고서는 사진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사진을 취미로 하면 할수록
무언가 가슴속에 꿈틀거리는것이 느껴졌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고, 느끼고 할때마다
가슴속의 엉어리는 점점 커지는것을 느꼇다

2002년 봄
중국으로 떠났던 친구로부터
한통의 메일이 왔다

네팔이라고,
이미 몇달째 여행중이던 친구는
심심하다고, 넘어오라고,
그 메일을 받자마자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그래 떠나자
나는 지금 하고있는 프로젝트가 완료되는데로 떠나겠다고
답메일을 보내고는

설레임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여름쯤에나 끝나기로 했던 프로젝트가 의외로
일찍 끝나고
나는 그 즉시
회사를 그만두고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여권을 만들고,
여행을 떠난다는 말에
이성순 선배- 사진학원에서 만난 동아대학교 12년 선배님
가 렌즈 하나를 선물해 줬다
니콘 70-300 렌즈
망원이 없던 나에겐 무척이나 반가운 렌즈였다
카메라는 F90X에 FM2 까지
렌즈는 니코르 28-105, 70-300, 시그마 17-35 2.8~4,MF50mm
SB28 스트로보,맨프로토 190 삼각대,
필름은 슬라이드, 네가티브 합쳐서 100통
그리고 로우프로 미니트래커를 비롯한 장비들 몇개 구비하고
동대문시장에 가서 옷도 구입하고,
샌들도 필요하겠지,
트래킹화도 구비하구,
이것 저것 마음이 들떠서
여행준비를 했다

네팔까지 왕복 비행기값이 88만원 정도 했던것 같다
무작정 친구의 메일 하나만 믿고
한국을 떠났다

외국어라고는 전혀 못했지만
별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비행기는 홍콩에 들렀다가
몇시간 뒤 네팔항공을 타고
드디어 네팔 공항으로 발을 디뎠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배낭여행 나가는것은 엄청난 일일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지만
너무 쉽게 너무 빠르게
나는 네팔 공항에 있었다

공항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와 만나
택시를 타고
타멜 스트릿의 Hotel Panda 로 향했다
빌라 에베레스트가 있는곳의 바로 밑이었다

친구는 내가 온다고 빌라 에베레스트의 도미토리에서
방을 호텔로 옮겼다

솔직히 나는 처음 도착한 순간
친구를 만나는 것은 너무 반가왔지만

시골 역사 대합실같은 카트만두 공항과
역시 허름한 병원의 병실 같았던
호텔의 방을 보고는
너무 실망을 한 터였다

배낭여행 초심자의 느낌이었을까....

어쨋던
우리는 네팔, 인도,라오스,중국 등을 여행하기로 처음 계획을 했었지만
인생사 마음대로 되는것이 있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난
너무 준비도 없이 갔었던것 같다
이것 저것 알아보지도 않고
친구만 믿고 무작정 떠난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 여행일정들은
무조건 친구가 가자고 하는곳으로
갔었다
물론 친구의 선택은 옳았고
친구는 나를 배려해서 좋은 곳만을 어렵지 않게
다니려고 애써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난 나의 준비부족으로 인한
무지함을 괜히 친구에게
심통을 부리기도 했던것 같다

아니 좀 어렵게 여행하고픈 맘도 있었는데
친구는 이미 경험해본 일들이라
너무 쉽게 여행을 이끌어 가는것이 불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쨋던

네팔에 첫발을 디딘것이다

다음날

판다 호텔에서 내려다본
타멜 스트릿의 전경을 몇컷 찍었다


그때는
네팔 타멜 거리의 추리한 모습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분별을 못했던것 같다


한국에는 유적지는 대부분 보호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것이었는데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곳엔 길거리에 너부러저 있는것이
유물들이다


도무지 어떤것이 유물이고
어떤것이 일상생활하는
건축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거리에 있는
모든 유물들이
가치가 없어 보이기 까지 했다
너무 많아서,
너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어서
그런가 보다.


그리고
네팔은
불교와 힌두교가 공존하는 곳이다



불교식 스투파도 보이지만
힌두교식 동상들과 건물들도 보인다
사전 조사를 전혀 하지않고
왔던 내겐
너무 의아스러웠다


"타멜거리"


"스투파"


이곳의 스투파는
우리나라와 같은
역사의 유물이 아니라
현실이고, 삶이다


거리 곳곳마다 제단 같은 곳들이
있으며
지나가는 사람들 마다
그곳에 절을하고 표식을 한다


스투파는 사찰에 갇혀있는것이 아니라
골목골목
사람들이
필요한 그곳에
사람들과 함께
서있었다



네팔엔
티벳에서 넘어온
티벳 유민들이 많으며
또 이들의 종교인 불교와
스투파, 룽다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하나의 문화
릭샤
빼짝 마른 릭샤꾼이
릭샤를 끌때는
도저히 미안해서
탈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릭샤값은
깍으려는것이
여행꾼의 심리인가보다

그래서
깍기도 싫고 해서
왠만해선 릭샤는 타지않았다



카트만두
달발광장으로 가는길
곳곳엔
신들이
넘쳐난다



솔직히
힌두쪽인지
불교쪽인지

알지를 못한다
하지만
그네들은
그것이 그들 삶에서
무척이나 소중한
무언가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달발광장
외국인들에게는 꽤 비싼 입장료를 받는다
서성거리다 보면 입장료 징수원이 다가와서
입장권을 끊으라고 한다

이미 현지인화 되어있던
친구는
내가 티나게 하고 있으니
징수원이 왔다고 한다
여행 많이 한
한국인들은
대부분 현지인처럼
해다니기때문에
징수원들이 오지않는단다. ㅎㅎ

그래도 우린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그저
"I just going to Loyal Nepal Airline" 이라고 말해줬을 뿐이지만
그들은 그냥 보내줬다




달발광장은
네팔의 옛 왕조의 왕궁이다
자세한 내역이 궁금하신 분들은
위키피디아를 검색해 보시기를



친구의 뒷모습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는 이곳은
우리나라의 경복궁이나 다른 궁궐들처럼
담벼락이 쳐져 있지 않고
누구나 왕래하는
길처럼 뚫려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적지에도
그냥 관광객들이
올라갈 수 있다 - 트릭인가. 나는 그래서 더욱 가치를 몰라봤을수 있다



광장의 가운데에서는
무언가 행사가 진행되려고 하는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고
무언가를 설치하는 사람이 있다


꽤 아름다운 건물이지만
알지를 못하니
그저 겉만 보고 갈 수 밖에 없다
그냥 현지인들에게 그늘을 제공해 주는
건물인가 보다


아까의 행사장에서는
머리를 깍은 아이들과
아이들에게
물감으로 표식을 하는 사람이 보인다
종교적 입문식인것 같아 보인다


꽤나 중요한 종교행사인듯


사뭇 진지해 보이는 아이들과
아이들의 부모들도 모두 뒤에서서
지켜보고 있다


행사에 사용된 도구들


분명 내가보기엔
아름다운 유물인데
그것이
이곳 사람들은
동네 팔각정 처럼
사용하는모습은
아직도 적응이 잘 안된다.



칼리 신인듯
이곳 신들은
너무 사람들과 가까이 있는것 같다



다음에
다시 한번 네팔을 가게 된다면
공부좀 하고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달발광장 한쪽엔
골동품 시장이 열린다
진짜인지 이미테이션인지
구분하는 눈도 없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들에겐
모두 실생활에서 사용하던
진품이었으리라



왼쪽의 건물 바산타푸르 - 정교한 목조조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뿐
준비안된 배낭여행객에겐
그저 오래된 건축물일뿐


"입주위의 하얀것은 신상에게 밥을 먹인 모습"

내가 본
네팔
카트만두
타멜거리
그리고 네팔사람들에 대한 첫인상은
이사진과 같다
박물관에 갇혀있는 문화재가 아닌
이들의 신은
항상 거리에서 네팔사람들을 지켜주고 있고
그리고 네팔사람들은
이 신들에게 매일매일 공양하고 있다
신,삶,사람,문화재,유물,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역사가 아닌 현실인 것이다

오후엔
서울에서
인사동의 섬의 주인에게서
전달해주라는 물건을을 가지고
김홍성 선생님이 개업한 소풍 이라는 한국식당에 갔다


김홍성 시인의 시 한편
- 푸른 룽다 -
푸른 룽다 펄럭이는 날, 내 마음도 나부끼네
하늘 높이 새들은 날고, 흰 구름은 흘러가네.
사랑하는 나의 여인아! 잠시 나를 보내주오
순한 미소 지으면서 나의 배낭 꾸려주오.
기다리는 그대가 있어, 돌아오는 나도 있네
푸른 룽다 펄럭이는 날, 바람처럼 돌아오네.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가거들랑 아주가오
거짓 맹세 하지말고 아픈 추억 거둬가오.
기다렸던 푸른 하늘 하얀 구름 흘러가도
푸른 룽다 어디 갔나, 새들만이 날고 있네.
사랑했던 나의 사람은 흰 산 넘어 언덕 위에
배낭 베고 누웠으리, 푸른 룽다 바라보며
하늘 가득 푸른 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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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의 여행 - 소매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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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일 : 2004년 7월 10일 (이전블로그 이전작업중)
  • camera : nikon F90x
  • film : RDP III

 

 

갑자기 왜 섬에 가고싶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부산에서 오래도록 살았지만 가보지 못했던 그래서 기억속에 더욱더 환상의 섬으로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어서였는지 소매물도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 주의 토,일요일을 기해서 갔다오기로 마음먹었다.

7월초 , 장마는 비는 오지않고 후덥지근하고 흐린 날만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었고, 계획한 토,일요일 비가 오지 않는다는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인터넷으로 간단한 정보만 확인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같이 가기로한 다른 일행이 아직 결정을 못내리는 바람에 토요일 저녁 늦은시간에야 출발했다.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해서 근처의 가까운곳에 숙소를 정하고 에어컨바람에 적응못해 밤새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새벽6시쯤에 눈을떳다.

7시 첫배를 타기위해 차를 여객선 터미널주차장에 주차시키고 표를끊고 잠시 담배한대 피면서 주위를 돌아보니 역시 통영의 명물 충무김밥을 파는곳이 많았다.


섬안에서는 제대로 요기를 해결할 곳이 없기에 충무김밥을 사서 준비해 가는것도 좋을것 같았다. 하지만 배시간이 임박했기에 충무김밥을 사진 못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충무김밥은 멀리 배를타고 나가기전에 오래도록 상하지않게 하기위해 김과밥따로, 반찬따로 싸서 먹게된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배는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기전이라 그런지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배엔 자리가 많이 남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남해의 섬들의 풍경을 보고싶어 일찌감치 배의 뒤편 갑판에 자리를 잡고 바람을 맞으며 안개속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라져가는 섬들을 눈에 각인시키며 소매물도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배는 비진도에 한번 사람들을 내리고, 매물도에 또한번 사람들을 내리고는 곧장 소매물도를 향했다.

 

 

 

-드디어 도착한 소매물도의 선착장

 

 

 

소매물도는 정말 조그마한 섬이었다.


포구앞에서면 마을을 모두 볼 수가 있었고 집도 몇채 되지 않았다. 소매물도의 집들은 대부분 민박을 겸하고 있기에 성수기가 아니라면 아무때고 가서 아무집이나 들어가서 자고 올 수가 있다.


선착장에 내려 포구에 들어서자마자 호객행위를 하는 아저씨들이 여럿 있다. 그중 목소리큰 아저씨말을 들어보고 배로 섬일주하고, 등대섬까지 갔다오는데 5000원이라고 한다.

 

 

 

 

 

처음계획은 걸어서 등대섬을 가는것이었지만 우린 일단 섬관광을 하고 가자는데 동의하고 호객행위를 한 아저씨의 배에 탑승했다.


배이름은 '해영호'.


아주 작지만은 않은 낙시배였다.


주위를 보니 조그마한 보트들도 있었고 해영호는 그중에선 꽤나 큰 배에 속했다..
이배엔 우리일행 포함해서 10명이 탔다.

 

 

 

 

 

 

공룡같이 생긴 바위들도 있고 , 손가락바위 등등 소매물도의 뒤쪽은 마을에서 본 모습과는 다른 기암괴석이 아주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날씨가 맑고 빛이 좋은 날이었으면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리라 마음속으로 아쉬워 하면서 우린 그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속에 새기는데 정신없었다.

 

 

 

 

조금 더 오래도록 감상하고 싶었건만 선장아저씨는 나의 마음과는 아랑곳없이 배를 몰고 계속 앞으로 전진할 뿐이었다.

 

섬주위엔 정말 많은 낚시꾼들이 있었다.

 

갯바위 곳곳마다 낚시꾼들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배가지나가자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도심을 벗어나 낮선 섬에서 낚시를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유를 느끼는듯 했다.

 

 

 

 

멋진 바위들에 감탄하며 조금 더 이동하자 등대섬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사진에서 본 모습과는 달리 등대섬은 뒤쪽에 훨씬 멋진 바위와 기암절벽을 간직한 섬이었다.

 

앞쪽의 푸른 초원과 뒤쪽의 기암절별은 무척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등대섬의 뒤쪽엔 파도가 빚어낸 천연 동굴이 있었다. 배는 천천히 동굴속으로 미끄러져 갔다.

하지만 배는 동굴의 구석구석을 보고싶어하는 나의 마음과는 달리 조금도 멈추지 않고 지나가버렸다.


너무나도 짧은 동굴여행은 가슴에 아쉬움만을 남긴채 후딱 지나가버린 배를 원망해야만 했다.

 

 

 

 

- 파도가 높지 않을때는 동굴 안으로 배가 들어간다

 

 

 

 

동굴을 빠져 나오는 곳에서는 세월을 등진듯한 낙시꾼의 모습과 창공을 배회하는 갈매기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기암절벽의 아름다움은 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줬다. 병원에 1주일이나 입원할정도의 치명적인.......


배위에서 경치에 취해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다가 필름이 떨어져 카메라가방에 필름을 꺼내고 급히 자리로 돌아오는 순간 배는 한쪽으로 기울어졌고 난 한손엔카메라를 다른손엔 필름을 쥐고 있던터라 손을 사용하지 못한채 배의 어딘가에 정강이를 찍히고 말았다. 하지만 멋진 풍경은 내몸에서 마취작용을 했는지 별다른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난 멋진경치에 취해버렸었다.

 

 

 

 

아쉬움을 뒤로하며 배는 동굴을 빠져 나왔고, 동굴의 아름다움을 곱씹을 틈도 없이 또다른 풍경을 구경한다고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소매물도 하면 등대섬의 등대의 모습이 전부인줄 알았다. 만약 섬일주 여행을 안했더라면 지금도 그랬을것이다.
하지만 소매물도에 다시오더라도 섬일주는 꼭 다시 하고싶을만큼 멋진 풍경이 많은 곳이었다.

 

 

 

 

배는 등대섬을 한바퀴 돌고나서 등대섬의 한쪽편에 우리를 내려놓고 1시간 반뒤에 다시 오기로 하고 떠나갔다.
등대섬은 정말 연인과 어울리는 섬인것 같았다.


섬의 어느곳에서도 연인과 손맞잡은 모습은 섬의 풍경과 같이 어울려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다음에 올땐 연인과 같이 올 수 있을까..T.T

 

 

 

- 소매물도에서 바라본 등대섬

 


마침 썰물때인지라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잇는 몽돌길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걸어서 소매물도쪽으로 건너갔다가 그곳에서 등대섬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등대섬을 올라갔다.


올라가는 도중 그때서야 아까 다친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약간 까졌으리라 생각했던 정강이는 들여다 보는순간 엄청난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마땅한 구급약도 없었기에 피를 흘리면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피를 본 순간 상처는 왜그리도 아파오던지........

 

 

 

다리를 절며 올라간 등대섬은 배에서 볼때와는 또다른 경치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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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섬에서 바라본 안개낀 소매물도

 

 

- 등대관리사무소와 낙시꾼을 내리고 섬에서 나오는 낙시배

 

 

- 등대섬의 초원

 

 

- 안개가 끼어 더욱 분위기가 신비스럽다

 

 

 

 

날씨가 맑지않았던것이 못내 아쉬웠었다.
하지만 흐린날씨와 짙은 해무는 등대섬을 신비의 섬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안개속에서 아스라이 모습을 드러내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등대와 그 아래의 절벽은 마치 어느 멋들어진 동양화를 감상하는듯한 몽롱한 느낌을 주었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도 섬의 멋들어진 풍광은 나를 편히 쉬지 못하게 했다.


섬의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다니며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있을 무렵 다리에선 생각보다 피가 많이 흘러내렸다.


마침 앞에 섬일주 여행배를 같이 타고 왔던 부부가 보여 피를 멈추게 하기 위해 화장지라도 있는지 물어봤다. 흔쾌히 화장지를 내주다가 상처를 보고는 화장지로는 안될것 같다면서 자신의 손수건을 내주면서 상처를 싸매고 지혈하라고 했다.


처음보는 사람에게 손수건을 내주는 분이 너무고마워서 혹 카메라를 들고 왔는지 물었다. 그 부부는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했고 난 사진을 찍어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부부도 카메라를 가져오지않았던것이 아쉬웠는지 사진을 찍어보내주겠다는 나의 제안에 기쁘게 생각했다.

 

 

 

 

어디로 서면 좋겠냐고 물어보길래 기왕 등대섬에 왔으니 등대가 보이는곳으로 위치를 잡게 하고 한장을 찍었다.


나중에 8x10으로 인화를 해서 보내주니 다시금 고맙다는 전화가 왔다.


여행중 난 이분들로 인해 조그마한 추억을 섬에 남겨두고 올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내어준 손수건덕분에 난 계속 섬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등대섬은 아쉬움도 던져줬다.


너무나도 아름답기에 그 아름다움이 최고조에 있을때 사진속에 남기고싶은 욕심이었다.
등대섬 이곳저곳 아름답지 않은곳이 없었고, 예쁘지 않은것이 없었다.

 

 

 

- 같이간 일행이 갯쑥부쟁이나 갯개미취라고 한다.

 

 

-참나리

 

- 괭이밥


아쉬움을 뒤로하고 배가 올 시간이 되어 섬을 내려갔다.


내려가는길에 또다른 배가 도착했는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다. 

 

 

 

어른들을 뒤로하고 열심히 올라오는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배는 정해진 시간에 거의 맞추어 도착했고 우린 멀어져가는 등대섬에 한동안 눈을떼지 못하고 섬을 돌아서 시야에서 사라질때 까지 바라봤다.

 

 

 

배는 소매물도를 돌아 다시 처음 배를탓던 선착장에 도착했다.


우린 배를내려 신비의 섬 등대섬에서의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고 나서야 소매물도의 마을을 차근히 바라볼 수 있었다.

선착장위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잡은 고기로 회를 팔기도 하고, 직접 해녀질을 해서 잡은 해삼멍게를 팔기도 했다.


올라가는 중에 해녀복을 입고 있던 이 아주머니는 내려오는 길에는 선착장에서 해산물을 팔고 있었다.


마음의 여유만 좀더 가졌더라면 직접잡은 신선한 해산물맛을 보면서 여행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갔다오고 나서 여행을 회상할 때야 비로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섬에는 매점이 한군데 밖엔 없다.


그것도 매일 문을 열지는 않는다. 매점 주인아저씨말로는 여름 성수기때 보름정도만 문을 연다고 한다.


매점앞엔 스쿠버다이빙 강습도 하는지 산소통들이 줄을지어 서있었다.


마침 매점은 문을 열고 있었고 아침을 제대로 먹고 오지 않았던 우리는 컵라면과 음료수로 간단하게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가격이야 섬이니 당연히 비싸게 받을 수 밖에 없는것이고. 준비성 없는 여행자에게는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매점에서 조금 쉬다가 우린 소매물도를 올랐다.
비교적 현대식 민박집인 다솔산장도 볼 수 있었고

 

 

 

-너무도 편해보이는 민박집

 

오르면서 몇가구 되지는 않지만 섬의 돌과 흙으로 지어진 집들은 바다와 썩 잘 어울렸고, 여느 관광지에서처럼 콘크리트로 보기 흉하게 올려진 건물들은 볼 수 없어 더없이 좋았다.

 

 

 

녹색의 스레트지붕은 섬의 풍광과 푸른 바다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지붕위에 얹힌 돌은 이곳이 바람이 많이 부는 섬마을이란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붉게 녹슨 양철지붕과 돌담, 그리고 비록 시멘트로 발려져 있지만 본래의 모양을 간직하고 있는 좁은 길, 

 

 

 

 

대문없는 집과 그앞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플라스틱 신은 언제인지도 모를정도로 잊고 지냈던 아득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섬의 등성이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20여채의 집들은 몇군데는 빈집도 있다.


하지만 대문도 없는 집들의 마당을 살짝 엿볼라치면 그 안에는 사람향기를 가득히 느낄 수 있었고,
휴식을 취하고 떠나가는 대학생들과 비록 하루,이틀 뿐이지만 정이 들었던 촌노들은 학생들이 떠나는길을 선착장까지 마중을 나가 한명한명 손을 잡아준다. 

 

 

 

 

등대섬은 그 아름다움으로 멋진 섬이라면 소매물도는 자연과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섬이다.

섬을 좀더 올라가 정상부근에는 지금은 폐교가 된 소매물도 분교가 있다.

현재는 카페와 숙박업소로 운영되고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마당과 전엔 교실이었을 안을 들여다보면 주인의 예술가적인 기질을 엿볼수 있었다.

교실 옆에는 편히 쉴수 있는 탁자와 바다를 향해있는나무엔 그네가 매달려 있다.

정말 아무생각 없이 며칠동안 도시를 벗어나 책과 공상속에서 자연과 함께 보내고픈 생각이 꿈틀거렸다.

 

 

 

 

늦은 아침에 아무걱정없이 일어나 그네에 앉아 푸른 남해바다를 몇시간이고 바라보고픈 그런 생각이 발길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일정이 빡빡한 여유없는 여행자에겐 잠시만의 꿈일 뿐 곧 그곳에서 발을 돌릴 수 밖엔 없었다.

마당엔 수국이 풍성하게 피어 여행자의 마음을 풍요롭게 했다.

폐교는 섬의 정상부근에 있었다.

정상엔 예전엔 기상관측을 했을법한 돔형의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폐허처럼 방치되어 있었고, 날씨만 좋았다면 이곳에서 등대섬을 바라보는 조망도 좋을것 같았다.

 

 

 

정상을 조금 지나면 왼쪽으로는 기암절벽이 펼쳐져 있는 곳이 나오고 조금만 더 가면 등대섬을 조망할 수 있는곳이 나온다.


그곳에서 등대섬을 바라보니 보트한척이 관광객들을 태우고 등대섬 주위를 질주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함성을 지르며 즐거워한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모습이다.

 

 

 

 

 

 

안개가 짙게 끼어 등대섬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순 없었지만 안개가 약간 겆힐때 등대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만족하고 섬을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타래난초


소매물도와 등대섬...


한번가서 전혀 다른 두 섬을 볼 수 있는곳.


그리고 그 섬들은 서로 남이 아니라고 항변하듯 길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여행자들에게는 1+1=2 가아닌 그이상의 시너지효과를 주는 형제섬으로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섬!


그 이름만으로도 묘한 흥분을 일으키며 그 속에서 모든것을 잊고 지내고 싶은 마음속 충동을 끌어내는곳.


난 그 섬을 여행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첫번째로 선택한 곳이 소매물도와 등대섬이었다.


크게 기대를 안하고 가서 그런지 그 섬의 아름다움에 너무 취해버렸고, 다시한번 이곳에 찾고자 하는 마음이 들게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반쪽의 여행이라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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